경이로움은 울 엄니의 품속이어라

박현옥 시인의 마음자락 | 기사입력 2023/01/17 [09:40]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경이로움은 울 엄니의 품속이어라

박현옥 시인의 마음자락 | 입력 : 2023/01/17 [09:40]

▲ ▲바람은 장불재서 휘몰아치고 난 서석대서 용트림한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 멀리서만 바라보았다. 못 들어가니 더욱 신비로운 정상.  © 화순매일신문

 

▲ ▲하늘 위로 솟은 돌기둥이 천하를 품은 듯한 무등산의 주상절리대.  © 화순매일신문


뿌연 황사 틈으로 파고드는 실바람에

잔잔한 미소 지으며 가벼이 나선 걸음

눈 속에 조릿대의 초록초록한

정겨운 사잇길을 지나니

바람이 용트림하는 장불재에 들어선다.

 

멀리 바라다보였던 장불재 송전탑이

우주선만큼 크게 다가설 때쯤

발목은 뻐근하고

허벅지는 나무토막처럼 뻣뻣함을 느끼지만,

이미 나의 시선은 물 먹은 몸을 떠나

서석대를 향하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무등산의 주상절리대.

단면도 멋진 쓰러진 돌기둥은

지친 다리를 받쳐주고

억새의 모습이 백마와 같은

백마 능선에서 바라본 발아래 하늘은

쓰러진 마음 보듬어 준다.

 

천고지 넘는 산 정상에서 만난 경이로움은

준비 없이 나선 산행에서 힘듦을 싹 잊어버리고

그저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2023.1.7. 준비 없이 나선 무등산 산행이었지만.

  

 

만만히 준비하고 살아도 힘든 순간순간이 있는데, 준비 없이 나서는 삶이란 힘이 든다. 가벼이 나선 산행에서 걸음걸음마다 많은 걸 심어 놓고 왔다. 좁은 길을 스치는 빙판길에서 내가 넘어지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오르막 내리막길에서 아차 하면 무서운 결과가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 산행을 나서면서 빙판길 안전 장비도 없이 참으로 무모한 산행이었다.

 

한 걸음 옮기는 위험만 감수하느라 그 아름다운 설경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넘어지지 않으려 힘준 다리는 며칠이 가도 풀리지 않아서 고생이었다. 겨울 산행에서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옮기는 발걸음이 우리 삶이 아닐까! 정상에서 맛보는 성취감 그 희열. 우리네 삶도 그러하다는 것을 구구절절 가르쳐 주지 않아도 뼛속 깊이 파고드는 현장 체험이었다.

 

 

지금도 찬 바람이 볼을 스치고, 감각 없는 발은 먹먹하지만, 잔잔히 스며든 여유 자락에 휘감겼던 행복이 스멀스멀 파고든다.

 

박현옥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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