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미소 지으며 가벼이 나선 걸음 눈 속에 조릿대의 초록초록한 정겨운 사잇길을 지나니 바람이 용트림하는 장불재에 들어선다.
멀리 바라다보였던 장불재 송전탑이 우주선만큼 크게 다가설 때쯤 발목은 뻐근하고 허벅지는 나무토막처럼 뻣뻣함을 느끼지만, 이미 나의 시선은 물 먹은 몸을 떠나 서석대를 향하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무등산의 주상절리대. 단면도 멋진 쓰러진 돌기둥은 지친 다리를 받쳐주고 억새의 모습이 백마와 같은 백마 능선에서 바라본 발아래 하늘은 쓰러진 마음 보듬어 준다.
천고지 넘는 산 정상에서 만난 경이로움은 준비 없이 나선 산행에서 힘듦을 싹 잊어버리고 그저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2023.1.7. 준비 없이 나선 무등산 산행이었지만.
만만히 준비하고 살아도 힘든 순간순간이 있는데, 준비 없이 나서는 삶이란 힘이 든다. 가벼이 나선 산행에서 걸음걸음마다 많은 걸 심어 놓고 왔다. 좁은 길을 스치는 빙판길에서 내가 넘어지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오르막 내리막길에서 아차 하면 무서운 결과가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 산행을 나서면서 빙판길 안전 장비도 없이 참으로 무모한 산행이었다.
한 걸음 옮기는 위험만 감수하느라 그 아름다운 설경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넘어지지 않으려 힘준 다리는 며칠이 가도 풀리지 않아서 고생이었다. 겨울 산행에서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옮기는 발걸음이 우리 삶이 아닐까! 정상에서 맛보는 성취감 그 희열. 우리네 삶도 그러하다는 것을 구구절절 가르쳐 주지 않아도 뼛속 깊이 파고드는 현장 체험이었다.
지금도 찬 바람이 볼을 스치고, 감각 없는 발은 먹먹하지만, 잔잔히 스며든 여유 자락에 휘감겼던 행복이 스멀스멀 파고든다.
박현옥 시인/수필가
<저작권자 ⓒ 화순매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사설칼럼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