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에 있는 아득한 내 그리움이여

화순야담(和順野談)-‘이서 적벽’
소동파 적벽부의 배경이 된 적벽닮은 아름다움
조광조의 죽음과 유배 생활의 쓸쓸함 달래 줘

김재근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2/12/25 [13:56]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저 하늘에 있는 아득한 내 그리움이여

화순야담(和順野談)-‘이서 적벽’
소동파 적벽부의 배경이 된 적벽닮은 아름다움
조광조의 죽음과 유배 생활의 쓸쓸함 달래 줘

김재근 객원기자 | 입력 : 2022/12/25 [13:56]

  © 화순매일신문


중종반정
(中宗反正), 역사는 그리 말한다. 진성대군은 조선 성종의 아들이자 연산군의 동생이다. 연산군이 죽이지 않고 살려둘 걸 보면 정실 소생이지만 야무진 인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쿠데타 세력이 연산군을 쫓아냈다. 잠자다가 얼떨결에 왕으로 추대되니, 중종이다.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얻는 대가(代價)로 조강지처를 버렸다. 매일 아침 경복궁 담장 너머 인왕산 바위에 걸린 붉은 치마를 보며 아내가 그리워 질질 짰다고 한다. 이 찌질이 왕이 정치 좀 해 보겠다고 조광조를 발탁하여 앞장서게 했다.

 

이 조광조가 문제다. 삶 자체가 도덕 교과서다. 자나 깨나 바르거라 착하거라 하는데, 이거 배겨 낼 인간 절대 없다. 그러하니 사방이 적이다. 찌질이도 질렸던지 돌아앉았다. 4년이나 버틴 게 기적이다. 오죽했으면 벌레들에게 시켜서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글을 새기게 했을까. ()씨가 왕이 될거라고.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화순 능주로, 최산두는 동복으로 귀양 왔다. 최산두는 36, 조광조는 37세였다. 천 리 밖으로 쫓겨났으니 조광조와 무게감은 그리 다르지 않았나 보다. 조광조가 한 달을 못 채우고 사약 받고 죽었지만 최산두는 적벽 보며 14년을 보냈다.

 

소동파(蘇東坡), 이름은 소식(蘇軾)이다. 북송 최고의 시인이며, 문장에도 뛰어나 당송팔가(唐宋八大家)의 한자리를 꿰찼다. 너무 뛰어나도 문제다. “독서가 만 권에 달하여도 율()은 읽지 않는다라는 말로 지식인들의 심기를 건드려 호북성(湖北省) 황주(黃州)로 유배갔다. 44세 때의 일이다. 유배 생활 중 적벽에서 놀며 <적벽부(赤壁賦)>를 지었다.

 

적벽강에 배 띄워 벗과 술잔 들어 시를 노래하니 뱃놀이 즐겁다... 아득한 내 그리움이여, 저 하늘 한 곳에 있는 미인(美人)을 바라보노라... 조조와 주유가 대적했던 적벽대전 슬프다... 자연은 아름다우나 인생은 허무하구나.“

 

당시 소동파는 요즘으로 치면 거의 방탄소년단 급이었다. 적벽부를 모르면 수염 쓸며 트림 좀 하는 선비 축에 들지도 못했다. 최산두는 더 애착을 가졌을 것이다. 당시 소동파의 처지가 자기와 별반 다름이 없었을 테니까.

 

같은 때 옆 동네로 유배 왔던 조광조는 죽었다. 하늘과 땅이 다르니 아득한 그리움뿐이다. 유배살이 하던 곳 풍광이 삼국지에 나오는, 주유 제갈량 방통이 한편 먹고 조조와 삼 대 일로 박 터지게 쌈박질했던 곳과 닮았었나 보다. 적벽이라 하였다.

 

국가 명승 112호로 지정되었고, 화순 8경 중 제1경이며, 천하제일경이라는 애칭도 가지고 있는 적벽은 온전히 최산두 덕이다. 그런데 금방 죽어 큰 인연을 맺지 못한 조광조는 화순을 상징하는 인물로 널리 알리지만, 화순제일경을 만든 일등 공신 최산두는 화순 사람들도 생소하다. 문장에 뛰어나 윤구(尹衢) ·유성춘(柳成春) 등과 함께 호남의 3()로 알려질 만큼 널리 교류의 폭이 넓었으니, 그는 당시의 적벽 홍보대사였던 셈이다. 그에게 큰 빚을 졌다.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자리 잡은 적벽은 노루목, 보산, 창랑, 물염 네 곳이다. 창랑과 물염적벽은 언제든 볼 수 있지만 노루목과 보산 적벽은 제한 관람만 가능했다. 동복댐 안에 있어서다. 화순 땅이지만 관리주체가 상수원으로 쓰고 있는 광주광역시였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말, 화순군의 염원과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광주광역시로부터 관리권을 찾아왔다. 내년(2023)부터는 상시 개방으로 아무 때나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다.

 

적벽은 화순의 대표 관광자원이다. 이름 짓고 널리 알린 이는 최산두이다. 지금부터라도 적벽하면 최산두를 떠올리자. 그에게 진 빚을 이렇게라도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화순야담(和順野談)은 오늘을 살피어 내일을 다듬는, 화순(和順)의 산물(産物) 인물(人物) 문화(文化) 음식(飮食) 이야기입니다. 화순야담은 김재근 객원기자의 글로 꾸려집니다. 화순야담은 네이버 블로그(cumpanis) ‘맛담 멋담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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