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집

박현옥 시인의 마음자락 | 기사입력 2023/03/10 [07:01]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옛집

박현옥 시인의 마음자락 | 입력 : 2023/03/10 [07:01]

  © 화순매일신문


비에 젖은 사립문 밀치고 들어서니

두레박 우물가에 이끼 낀 어린 시절이 담겨 있고

삭은 처마 끝에 매달린 추억이

바람에 한들한들 그네를 탄다

 

엄니

하고 부르면

정지 문틈 사이로 보일 것 같은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마솥 뚜껑을 열며

고실한 쌀밥 한 그릇 퍼주실 거 같은데

먼지 뿌연 부뚜막엔 세월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살강에 감춰둔 옥수수 그대로이고

갓 볶아 담아둔 깨소금 냄새

깨진 찬장 유리 사이로 솔솔 나는데

부뚜막에 앉아 김치 걸쳐 먹던 성은 없다

 

막대기 물고 장난치던 복실이

저만치서 눈만 끔벅끔벅

뒤돌아선 발걸음엔

침묵이 묶여 따라오고

식어버린 굴뚝엔

그리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해질녘 시골 길 돌담을 따라 걷다가 문뜩

 

누구나 고향이 있다. 가슴 켜켜이 쌓아놓은 먼지 묻은 추억들. 미소로 닦아내어 펼쳐보면, 마냥 입꼬리가 올라가고 어깨가 으쓱한 소소함이 고향이다. 돌담에 올려진 사금파리도 정겹다.

 

한 귀퉁이 내려앉은 빈집 찢어진 문풍지에 도란도란 얘기 꽃이 피어있고, 작은 방 시렁엔 아직 굳지 않은 가래떡도 있을 것 같은 나의 고향. 꺾이고 구멍 뚫린 감나무가 맥없이 쓰러지는 날에도 나의 고향 굴뚝엔 모락모락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를 것이다. 그런 고향이 우리에게 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이동
메인사진
포토뉴스
지리산국립공원 반야봉 상고대 ‘활짝’
이전
1/36
다음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
사설칼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