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곁에 있어만 준다면

박현옥 시인의 마음자락 | 기사입력 2023/02/24 [08:01]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그저 곁에 있어만 준다면

박현옥 시인의 마음자락 | 입력 : 2023/02/24 [08:01]

화장기 없는 하얀 피부가

오늘따라 유난히 곱다

오뚝한 콧날에 앉은 수줍은 미소

금방이라도 까르르

웃을 수 있을 것 같은 꽃잎 같은 그대

힘없는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그저 하염없이 나만 바라본다

손을 잡고 서로의 눈을 담아

애잔함을 전해보지만 바닥에 툭

그것으로 되었다는 듯이 씨익 웃는다

 

그녀의 하루 일상이다

 

어디에다 두고 왔을까, 우리의 흔적을

어디로 보냈을까, 우리의 꿈들을

함께 심은 꽃들은 피고 지고

다시 피어나건만

그대라는 꽃은 지기만 한다

 

펑크 머리 섹쉬한 모습 낮게 스치고

짧은 커트 머리에 다소곳한 모습은

나에게 있어 낯설게 다가든다

햇살 같은 날들이 가물가물 멀어져 가고

설익은 행복을 고이 접어

머리맡에 내려놓는다

 

사슴 같은 눈망울에 세월이 묻히고

내 옷깃 잡는 아이여도 좋아라

그저 곁에 있어만 주어도

살아낼 용기가 있다고

오늘도

간절하게 하루를 붙들어 본다.

 

2023.02.16. 치매로 아이가 된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애틋함

 

입안에 까칠하게 오물거려지는 것들이 있다. 치매가 앗아간 행복한 날들, 다시 올 수 없는 행복이다. 치매로 아이가 되어버린 아내를 바라보는 시린 마음이다. 젖은 숨소리 타고 깊은 맘속으로 하염없이 들어가고 말았다. 그 어떤 행동도, 혀 안에 맴돌아 삼켜지면, 목젖을 찌르며 심장으로 파고든다. 정말 어이없고 피를 토하는 심정일 것이다.

 

누구나, 예외일 수 없는 잔인한 병이 치매일 것이다. 얼마나 힘이 들면, 모든 것을 놓아 버리는 것일까! 놓친 그 마음을 잡고 애쓰는 것 또한 많이 힘이 들 것이다. 햇살이 내려 드는 창가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아이 같은 모습이 머리를 맴돌아 나간다. 하얀 머릿결에 세월이 꽃처럼 피어난다. 휑한 어깨에 놓인 시간은 무거워 보이고, 애써 웃는 모습이 나를 슬프게 하였다.

 

뻥 뜷린 심장으로 짠 바다가 밀려든다. 눈을 감고 파도에 몸을 실어본다.

 

박현옥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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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umpanis 2023/03/03 [11:51] 수정 | 삭제
  • 읽는 내내, 읽고 나서, 자꾸 다짐합니다. 오늘 이 순간 더 많이 사랑하겠노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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