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 부처는 일어날 날을…

화순매일신문 | 기사입력 2015/12/10 [18:11]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두 분 부처는 일어날 날을…

화순매일신문 | 입력 : 2015/12/10 [18:11]

▲ 8일 경비행기에서 바라본 운주사 와불.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고 누워있는 12.7m와 10.3m 크기의 와불을 완전한 모습으로 담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제공> GLORY YUN.     © 화순매일신문

장-마리 구스타프 르 클레지오는 지난 2001년 서울과 전남을 돌아본 뒤 ‘운주사, 가을비’ 제목의 시를 썼다. 그는 당시 천불천탑의 전설이 서려있는 운주사를 돌아본 뒤 감흥을 이 시에 담아 소개했다. 무엇보다 르 클레지오는 한국 방문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간 다음 날 자신을 초청했던 대산문화재단에 팩스를 통해 이 시를 전달했다. 대산문화재단은 ‘운수사, 가을비’를 공개, 각종 언론에 소개되며 이 시가 화제가 된 바 있다. 르 클레지오는 지난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프랑스 문단의 대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여기 르 클레지오의 ‘운주사, 가을비’를 싣는다.

▲ 8일 경비행기에서 바라본 운주사 와불.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고 누워있는 12.7m와 10.3m 크기의 와불을 완전한 모습으로 담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제공> GLORY YUN.     © 화순매일신문

‘운주사, 가을비’(Unjusa, Pluie d'Automne)

장-마리 구스타프 르 클레지오

흩날리는 부드러운 가을비 속에/ 꿈꾸는 눈 하늘을 관조하는/ 와불/ 구전에 따르면, 애초에 세분이었으나 한분 시위불이/ 홀연 절벽쪽으로 일어나 가셨다/ 아직도 등을 땅에 대고 누운 두 분 부처는/ 일어날 날을 기다리신다/ 그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거란다.

서울거리에/ 젊은이들, 아가씨들/ 시간을 다투고 초를 다툰다.

무언가를 사고, 팔고/ 만들고, 창조하고, 찾는다.

운주사의/ 가을 단풍속에/ 구름도량을 바치고 계시는/ 두분 부처님을/ 아뜩 잊은채/ 찾고 달리고/ 붙잡고 쓸어간다/ 로아*의 형상을 한 돌부처님/ 당신(堂神)을 닮은 부처님/ 뜬눈으로 새는 밤/ 동대문의 네온불이/ 숲의 잔가지들만큼이나/ 휘황한 상점의 꿈을 꾸실까?

( … 중략 … )

기다리고 웃고 희망을 가지고/ 사랑하고 사랑하다/ 서울의 고궁에/ 신들처럼 포동포동한/ 아이들의 눈매는 붓끝으로 찍은 듯하다/ 기다리고 나이를 먹고 비가 온다/ 운주사에 내리는 가랑비는/ 가을의 단풍잎으로 구르고/ 길게 바다로 흘러/ 시원의 원천으로 돌아간다.

두 와불의 얼굴은 이 비로 씻겨/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한세기가 지나는 것은 구름하나가 지나는 것/ 부처님들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꾼다/ 눈을 뜨고 잠을 청한다/ 세상이 벌써 전율한다.

서울-파리

2001년 10월 22일

번역 : 최미경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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