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란 때마다 충의를 다한 보성 출신 안방준 의병장 이야기를 다룬 역사소설 《사람의 길》이 출간됐다.
최근 들어 전남이 의향(義鄕)의 고장임을 밝히기 위해 집요하게 호남 민중의 애국정신을 재조명, 국운을 일으켜 세운 호남인의 기개를 밝히고 있는 정찬주 작가의 ‘임진왜란 명장수’ 시리즈 5번째 작품이다.
안방준(安邦俊 1573~1654) 의병장은 어린 시절 첫 스승 박광전(朴光前 1526~1597)의 가르침을 평생 그대로 실천한 수제자였다.
1592년 임진왜란, 1597년 정유재란, 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 등 국란 때마다 충의를 다한 그야말로 ‘사람의 길’을 걸었던 선비였고, 군자였다.
안방준은 1592년 약관 스무살 때 노스승 박광전을 따라 전라좌의병 임계영(任啟英 1528~1597) 의병장 산하 종사관으로 참전했다. 정묘호란 때도 의병장으로 출병한 안방준은 병자호란 때 64세의 노쇠에도 능주 매화정에서 의병청을 꾸리고 화순, 보성, 장흥, 나주, 강진, 함평 등 인근 지역 의병들을 모아 총궐기했다.
매화정에서 출병한 안방준 의병군은 김제를 거쳐 여산에 도착했을 때 남한산성 비보를 듣게 된다. 1637년 정월 25일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태종 홍타이지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안방준 의병장은 평생 커다란 전란을 4번이나 겪는 기구한 운명에도 그때마다 분연히 일어나 조국을 위해 기꺼이 싸웠던 실천적 삶을 살았다.
전란을 피한 시기에는 조정에서 여러 차례 등용하려 하였으나 출사를 거부하고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당시 동인·서인으로 갈린 정쟁에 몸담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보인다.
안방준은 또 평생 죽음에 이를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저술활동을 계속했다.
정찬주 작가는 “불행하게도 안방준 의병장은 크나큰 전란의 시기를 사는 바람에 집필 시간이 적었다”며 “역사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재평가하는 서책의 권수에서는 다산 정약용에 뒤지지 않는다”고 높이 평가했다.
안방준의 이같은 눈부신 족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정찬주 작가는 안방준의 스승 박광전 의병장의 가르침에 주목한다.
박광전은 손자 같은 안방준에게 《소학》에 나오는 ‘예가 아닌 것은 보지 말며, 예가 아닌 것은 듣지 말며, 예가 아닌 것은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닌 것은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고 ‘사물잠(四勿箴)’을 반복해서 가르쳤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스승과 제자의 예가 이럴진대 어찌 선비정신의 전범(典範)이 아니겠는가?
2016년 《이순신의 7년(전7권)》, 광주 민중항쟁 40주년 회심작《광주 아리랑(전2권)》(2020), 《아소까 대왕(전3권)》 등 대작을 발표했다. <저작권자 ⓒ 화순매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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