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섬 신안을 즐기다

편안한 ‘들녘’과 부드러운 ‘해안’
다리 건널 때 마다 미지의 세상

김재근 객원기자, 최순희 전남문화관광해설사 | 기사입력 2024/08/27 [08:01]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천사섬 신안을 즐기다

편안한 ‘들녘’과 부드러운 ‘해안’
다리 건널 때 마다 미지의 세상

김재근 객원기자, 최순희 전남문화관광해설사 | 입력 : 2024/08/27 [08:01]

▲ 천사대교. 오도선착장에서 바라 본 모습  © 화순매일신문


밥상에 여러 반찬이 철 따라 입맛 따라 오르내리지만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김치다
. 갓 지은 하얀 쌀밥에 묵은지 한 가닥,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변화무쌍하여 전뿐 아니라, 찌개, 볶음밥, 만두, 동그랑땡 등 어떤 요리도 가능하다. 김만조와 이규태는 󰡔김치견문록󰡕에서 김치의 일생을 11단계로 나누었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가 절임과 담금이다. “절이는 것은 님 멀리 두고 그리다가 마음에 사랑이 저려오듯이 서서히 조금씩 간이 배게 하는 과정이요, 담그는 것은 다양한 양념들의 배합으로 김치의 오묘한 맛을 만드는 마술로 고추, 소금, 마늘, , 새우젓 순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바다의 축복을 받는 신안에 산물(産物)이야 많지만, 김치가 기억하는 건 소금과 대파와 새우젓이다. 전국 생산량 규모로 천일염은 85%, 겨울 대파는 70%, 새우젓은 65% 정도이다. 김장 때마다 신안 천일염을 들여왔고, 새우젓과 대파도 꼭 넣는다. 김치전 한입만으로도 신안을 맛볼 수 있다는 뜻이다. 운동하며 마시는 물에는 신안 천일염으로 만든 용융소금을 한 스푼 넣는다. 신안은 생각보다 가까이 내 곁에 있는 셈이다.

 

▲ 천사섬 상징물. 압해도 천사대교 전망대에서. 섬마다 모양을 달리한 1004가 있다.  © 화순매일신문


신안(新安)은 새로운 무안이라 뜻이다. 1969, 무안군에 소속된 섬 지역이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우리나라 섬은 3,348개이고 30% 정도인 1,025개가 신안군 관할이다. 신안군은 천사섬이라며, 유인도가 72개 무인도가 932개로 1,004개라고 한다. 이중 큰 섬이 14개로 섬 이름이 바로 행정명이다. 군청 소재지가 있는 압해도는 압해읍, 육지가 된 지도는 지도읍, 임자도는 임자면. 이렇게 212면의 행정구역이 되었다.

 

하루 여행으로 신안을 다 볼 수 있다는 건 오만이다. 바둑알을 한 움큼 쥐어 뿌린 듯 멀리 때론 가까이 펼쳐진 섬들을 하루 만에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지경이다. 여행 지도도 북부권, 중주권, 남부권, 흑산권으로 나누어져 있다. 북부권과 중부권은 차량으로 목포와 무안에서, 남부권과 흑산권은 배로 목포항에서 들어간다. 북부권은 증도와 임자도 등이, 중부권은 압해도와 암태도와 자은도 등이, 남부권은 비금도와 하의도 등이, 흑산권은 흑산도와 가거도 등이다.

 

짜장과 짬뽕을 놓고 고민하듯 쉽게 결정 내리지 못했다. ‘선택과 집중을 경전처럼 대하던 때가 있었다. 특정 분야를 선택하고 거기에 자원을 집중시키는 경영 전략에서 출발하여 기업 경영과 국가 경영 심지어 개인의 자기 계발이나 자산 관리에서도 두루 쓰이는 용어다. 여행을 하면서 좋아하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여행에서는 선택과 순응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선택에 옳고 그름도 없고, 집중을 따지는 것도 무의미해서다. 겸허한 순응이 있을 뿐이다. 특히 섬 여행에서는 더욱더.

 

김영하가 󰡔김영하 여행자 도쿄󰡕에서 이런 멋진 말을 했었다. “도시에 대한 무지, 그것이야말로 여행자가 가진 특권이다. 그것을 깨달은 후로는 나는 어느 도시에 가든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말을 다 신뢰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앎에 갇혀있다.” 이런 말도 했었다. “한 번의 여행에서 모든것을 다 보아버리면 다음 여행이 가난해진다. 언젠가 그 도시에 다시 오고 싶다면 분수에 동전을 던질 것이 아니라 볼 것을 남겨놓아야 한다.” 이 말을 이번 섬 여행에 적용해 보았다. 메뉴에 없는 짬짜면을 만들었다. 대충 정확하게 즐기는 나만의 섬길 드라이브를. 하나의 섬에서 한 가지만 보고 마지막 임자도에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 슬로시티호. 자은도 고교선착장에서 증도 왕바위선착장을 하루 네 번 오간다.  © 화순매일신문


함평교차로(JC)에서 15번인 서해안고속도로와 12번인 광주무안고속도로가 잠시 만나 헤어진다. 서쪽 무안공항 방면으로 나아가면 지도읍을 지나 임자도와 증도로 들어갈 수 있다. 남쪽 목포 이정표를 따라가면 압해대교 건너서 압해도 천사대교 넘어서 암태도로 들어간다. 819, 중부권으로 들어가서 북부권으로 나오는 여정에 올랐다.

 

천사대교(千四大橋).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군의 특성을 반영한 이름이란다.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하는 연도교(連島橋)7.22km 길이다. 압해도 쪽이 현수교(懸垂橋), 암태도 쪽이 사장교(斜張橋). 중간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천사 날개 타고 오르내린달까, 천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압해도에 있는 천사대교 전망대에 천사의 날개인 듯한 상징물이 있지만, 암태도 오도선착장이 사진발을 더 잘 받는다.

 

길 따라 나아가면 동백꽃 아래 환한 할머니 할아버지 벽화가 있는 기동삼거리가 나온다. 좌회전하면 안좌도 지나 퍼플섬, 우회전하면 자은도다. 목적지는 자은도지만, 5분 거리에 있는 암태도 소작쟁의 기념공원을 보고자 좌측으로 꺾었다. 공원이란 이름이 무색하다. 안내판과 기념탑, 이게 전부다. ‘암태도 소작쟁의(巖泰島小作爭議)’19238월부터 19248월까지 암태도 소작인들이 벌인 농민항쟁이다. 한국농민운동사상 의미 깊은 것으로 평가된다. 국사 시간에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은암대교를 건넌다. 좌우로 섬, , 섬이다. 푸른 비단을 펼쳐 좋은 듯하다. 그림처럼 조용하다. 자은도에 들어섰다. 드넓게 논과 밭이 반긴다. 대파가 녹색 물결을 이룬다. 우리나라에서 12번째로 큰 섬이다. 생산량은 임자도가 많지만 재배 면적은 자은도가 더 넓단다. 창문을 열었다. 더운 공기에 파 내음이 실려 온다. 라면 한 입 후루룩 빨고 숨 들이켜면 그대로 대파라면이 될 것 같다.

 

▲ 무한의 다리. 자은도 둔장해변에서 구리도와 할미도를 연결하는 보행교다. 사진 좌측이 할미도. 할머니 망부석이 있다.  © 화순매일신문


항구마다 포구마다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린 곳이 섬이다. 자은도에서 두 여인을 만났다. 젊은 그리고 늙은. 젊은 여인은 분계해변에 있었다. 자은도에서 백길해수욕장과 더불어 가장 사랑받는 해수욕장이 있는 곳에 소나무 한 그루, 여인송이다. 거꾸로 선 여자를 닮은 소나무다.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다 이리되었다 한다. 보는 위치에 따라 모습이 달랐다. 묘한 에로티시즘이다. 늙은 여인은 무한의 다리건너에 있었다.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은 할아버지를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 한다. 무한의 다리는 둔장해변에서 구리도와 할미도를 연결하는 보행교다. 88섬의 날을 기념하고, 신안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무한대()의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신안 여러 보행교 중 걷는 맛도 풍광도 의미도 이곳이 제일이 아닐까 싶다.

 

무한의 다리에서 가까운 곳에 고교선착장이 있다. 중부권에서 북부권으로 순간이동 할 수 있다. 뱃길로 자은도와 증도가 15분이면 충분하다. 차량으로 목포와 무안을 거쳐 차로 빙 둘러 간다면 두 시간 넘는 길이다. 하루 네 번, 차량은 2천 원, 사람은 1천 원이다. 울렁이는 설렘은 없었지만 운치는 좋았다.

 

증도 왕바위 여객선터미널에 내렸다. 염전과 갯벌과 모래사장과 해송 숲이 어우러진 슬로시티다. 보물섬이라고 불리게 된 해저유물 매장해역(新安海底遺物埋藏海域)도 여기다. 자전거를 타고 섬과 갯벌 사이를 누벼야 이 섬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나오니 우전해변 엘도라도 리조트 앞에 갯벌 박물관이다. 그곳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드라이브 여행만 아니라면, 아쉬움이 남는다. 월요일이라 쉰다니 애써 위안으로 삼는다.

 

▲ 태평염전. 소금창고가 끝없이 늘어서있다. 도로는 포장 전 신작로 모습이 인상적이다.   © 화순매일신문


태평염전에서 차를 멈췄다. 계속 달렸으니 잠시 걸어도 좋을 듯했다. 정문 앞 50미터 남짓한 언덕 위, 전망대에 올랐다. 쉬엄쉬엄 10분 남짓, 광활하다. 단일염전으로는 전국 최대의 크기로 여의도 2배라는 넓이란다. 한국전쟁 끝나고 피난민들이 많이 내려왔다고 한다. 그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상 증도와 하 증도 사이 갯벌에 염전이 들어서면서 두 섬이 하나로 합해져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증도대교를 넘었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갯벌이 펼쳐진다. 사옥도 지나, 솔섬을 건넜다. 그림책 넘기듯 풍경을 본다. 지도에 들어섰다.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가면 임자도, 우측으로 가면 무안 해제다. 임자2대교 건너 수도 지나고 임자1대교를 건넜다. 튤립과 홍매화의 섬이다. 붉은 지붕이, 꿈이 있는 교회가, 꿈을 키우는 초등학교가 인사한다. 임자 반갑소.

 

▲ 임자도 대광해수욕장 가는 길의 대파밭 모습.  © 화순매일신문


대광해수욕장 가는 길, 늦은 점심이 생각났다. 여행의 절반은 먹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중요한 걸 깜박하다니. 파밭이 보이는 창문 아래서 짜장면을 먹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짜장면 반찬으로 대파의 흰 부분을 툭툭 잘라 갈색의 춘장과 함께 내주던 시절이 때가 있었다고. 지금은 양파에 검은색 춘장 또는 단무지가 오르지만. 그 말을 들은 후 짜장면을 배달시켜 파절이나 파김치와 먹곤 했다.

 

중국 옛 문헌인 󰡔예기(禮記)󰡕는 고기회를 먹을 때, 봄에는 파와, 가을에는 갓과 더불어 먹는다고 했다. 해독작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파는 짜장면에도 잘 어울렸다. 달짝지근하고 통통한 면을 날씬하게 해주는 맛이랄까. 별미로 즐기기에 좋았다. 대파밭 앞이라면 이런 대파짜장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오지랖 넓게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입가심으로 대파향이 나는 카스테라인 대파테라한 입, 아쉬움 달랬다.

 

▲ 대광해수욕장. 우리나라 최대 백사장을 자랑한다.  © 화순매일신문


대광해수욕장에 들어섰다. 백사장 길이 12km, 너비 300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넓다. 모래 둔덕에 올랐다. 곰솔이 울창하다. 해안선을 따라 고운 모래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아스라한 모래밭이다. 가족끼리 오붓하고 한적한 피서를 즐기기에는 자은도의 해수욕장이 좋아 보였다. 이곳은 여자에게 버림받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펑펑 울기에 딱 어울려 보였다. 해지는 모래사장에서 한 서린 낙서를 본 적이 있다. ‘OO, 보고 잡아 미치겠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쓰기는 좀 그렇고, 사대부 집안 자제답게 몇 자 적었다. ‘곱단마님, 여그 참 좋소.’

 

다음은 새우젓을 구경할 차례, 젓갈의 역사는 길다. 신라 신문왕이 왕비를 뽑을 때 예단 품목에 젓갈이 들어 있을 정도로. 그 젓갈의 대표가 새우젓이다. 전장포는 새우 파시가 형성됐을 정도였다. 이 일대에서 지금도 매년 1,000여 톤의 새우를 건져내는데, 이는 우리나라 새우젓 어획고의 70%를 차지한다. 새우 서식에는 모래갯벌이 발달한 바다가 최적지다. 대광해수욕장의 너른 백사장 같은.

 

임자도가 호리병 모양인데 전장포는 주둥이에 해당하는 곳이다. 병목에 해당하는 부분이 대광해수욕장이고. 전장포항에 들어섰다. 뒤쪽 언덕에 있는 소금 토굴도 들렀었다. 문이 닫힌 입구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이곳도 그곳도 한적했다. 지난날 들썩거렸던 포구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뜨거운 8월의 뜨거움만 넘쳐났다. 바다가 멀어진 갯벌에 내린 햇살이 눈부셨다. 고깃배 한 척 항구로 들어왔다. 선착장 끝에선 바지 높이 걷어 올린 사내가 낚싯대 세 개 담근 채 꾸벅꾸벅 졸았다. 점점이 구름 흘러가는 하늘 아래 곽재구 시비가 외로웠다. 새우 동상 아래 <전장포 아리랑>이 새겨진. “전장포 앞바다에 웬 눈물방울 이리 많은지 / 각이도 송이도 지나 안마도 가면서 / 반짝이는 반짝이는 우리나라 눈물 보았네 / ...... / 손가락만 스쳐도 울음이 배어나올 / 서러운 우리나라 앉은뱅이 섬들 보았네 / ...... .”

 

▲ 송도. 신안군 송도위판장 앞 포구. 일과를 마친 고깃배가 노을 아래 잠긴다.  © 화순매일신문


되돌아 나왔다. 지도에 신안젓갈타운이 있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여러 가지 젓갈보며 옛 기억 하나 떠올렸다. 풋고추 송송 썰어 넣은 멸치젓에 꽁보리밥 물에 말아 후루룩, 한여름 나던 때를. 그 앞 솔섬엔 신안군 송도위판장과 수산물유통센터가 자리 잡았다. 병어와 민어와 새우젓 거래량이 전국 최고라 한다. 전장포가 한가로울 만했다. 해가 저물었다. 작업을 끝낸 고깃배들이 저녁노을 덮고 나른한 휴식에 들어갔다.

 

신안에서 하루 동안, 멋졌다. 신안의 들녘은 편안했고, 해안은 부드러웠다. 신이 내린 축복인 듯했다. 다리 건널 때마다 천사가 나팔 불며 마중 나와 또 다른 미지의 세상으로 안내할 것만 같았다. 축복을 음미하듯, 차로 달리고 배를 타며 아홉 개의 섬을 마실길 나선 것처럼 스쳐 지났다. 서너 시간 배를 타고 들어가 스며들듯 오래 머무르는 것 못지않은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다도해를 따라가며 이 즐거움을 이어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마음은 벌써 울돌목 넘으며 진도아리랑 흥얼거린다.

 

멋진 도움을 준 신안군 이향란박옥례 전남문화관광해설사, 천사대교 안내소에서 안내서를 챙겨 준 윤미숙님께 고마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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