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고 시작하는 이때쯤, 회자하는 말이 있다. 갑진·을사·병오 같은, ‘푸른 용’이니 ‘푸른 뱀’이니 ‘붉은 말’이니 하는 것들도. 2025년은 을사(乙巳)년으로 파란 뱀의 해다.
'갑진', '을사', ‘병오’ 등을 천간지지, 또는 간지라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60개다. 그래서 육십간지(六十干支) 또는 육갑(六甲)이라고 부른다. 10개의 천간(天干)과 12개의 지지(地支)를 순서대로 합하여 만들었다.
중국 고대 상나라 사람들은 천계에 10개의 태양이 있고, 하루에 하나씩 차례대로 뜨고 져서 10일 주기를 이룬다고 믿었다. 천간(天干)은 이것에 붙였던 이름에서 출발했다. 십간(十干)이라고도 부른다.
십이지(十二支)는 하루를 나누는 시간 단위다. 지금과 달리 12시간으로 나누었다. 자시는 밤 11시부터 1시까지다. 2시간씩 나아가면, 오시는 낮 11시부터 1시까지다.
십간(十干)은 갑(甲) 을(乙) / 병(丙) 정(丁) / 무(戊) 기(己) / 경(庚) 신(辛) / 임(壬) 계(癸)다.
십이지(十二支)는 해(亥 돼지) 자(子 쥐), 축(丑 소) / 인(寅 호랑이) 묘(卯 토끼), 진(辰 용) / 사(巳 뱀) 오(午 말), 미(未 양) / 신(申 원숭이) 유(酉 닭), 술(戌 개)이다.
십간과 십이지를 차례로 결합한다. 십간의 첫 번째인 '갑'과 십이지의 첫 번째인 '자'를 합하면 '갑자'가 된다. 각각의 두 번째인 '을'과 '축'을 결합하면 '을축'이다. 순서에 따라 하나씩 붙여 나가다 보면 60개가 되면서 다시 '갑자'다. 이를 '회갑(回甲)'이라 한다. 60년 주기로 무한 반복이다. 회갑잔치는 이런 의미다.
육십간지로 연(年), 월(月), 일(日), 시(時)를 다 헤아렸다. 이를 여덟 자로 나타낸 것이 사주팔자(四柱八字)다. 신년에는 신수(身數)를 보고 덕담을 나누었다. 양력으로 ‘2025년 1월 1일 새벽 1시’에 태어난 아이를 보자. 음력으로 '2024년 12월 2일생'이다. 사주팔자는 갑진(甲辰)년, 병자(丙子)월, 경오(庚午)일, 병자(丙子)시다. 인터넷에서 '만세력(萬歲曆)'으로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다.
색깔을 살펴보자. 유교(儒敎)는 음양(陰陽)과 오행(五行 ; 목·화·토·금·수)이라는 기호를 통해 세상을 해석했다. 음양오행은 사주를 보고, 점을 치고, 묫자리를 정하고, 궁합을 보고, 왕의 합방 날짜를 고르고, 길일을 선택하는 등 널리 사용되었다.
오행에는 각각의 색이 있어 오방색(五方色)이라 부르고 방위도 정했다. 십간과 십이지도 각각의 색이 있고 방위가 있다.
청색(靑色)은 동쪽이고 나무[木]이며 인·묘다. 적색(赤色)은 남쪽이고 불[火]이며 사·오다. 백색(白色)은 서쪽이고 쇠[金]이며 신·유다. 흑색(黑色)은 북쪽이 물(水)이며 해·자다. 황색(黃色)은 중앙이고 흙[土]이며 축·진·미·술이다.
뱀의 색깔을 구분하는 것이니 십간을 보자. ‘갑을’은 동쪽으로 파랑, '병정'은 남쪽으로 빨강, ‘무기'는 중앙으로 노랑, '경신'은 서쪽으로 하양, '임계'는 북쪽으로 검정이다.
2025년이 ‘을’미년이니, ‘을’은 동쪽으로 파랗다. 그래서 파란 뱀이다. 내년은 ‘병오’년으로 붉은 말이고.
60년 만에 맞이하는 ‘파란 뱀’이다. 100세 시대라고 하니, 40대 이하라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후의 연령대라면 안타깝지만 마지막 만남이다. 과거 을사년에는 대외적으로 큰일이 많았다.
60년 전인 1965년에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다. 국군 전투병이 본격적으로 전쟁터로 향했다. 미국 하와이로 망명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사망하였다. 굴욕이라는 비난 속에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120년 전인 1905년에는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이라고 불리는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었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압하여 체결한 조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가 갔고 통감부를 설치했다. 이에 따라 대한제국은 명목상으로는 일본의 보호국, 사실상으로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시인 서정주가 <화사(花蛇)>에서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몽뚱어리냐”고 노래했듯이 뱀은 그리 호감이 가지는 않는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 중략 - 우리 할아버지의 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라고도 했다. 기독교에서는 이브를 꾀어냈다고 하여 아예 사탄 취급을 한다.
하지만 사주명리학에서 뱀의 의미는 다르다. 뱀띠생은 인내심이 있고 온화한 천성을 가지고 있으며, 지혜롭고 용기가 있는 용의주도한 성품이라고도 한다. 2025년은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어수선하다. 모쪼록 뱀의 기운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경제가 한 걸음 더 도약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아울러 독자 여러분 모두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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