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특별한 답사를 알게 되었다. ‘나라사랑’을 표어로 건 ‘조선수군재건길’ 프로그램이었다. 답사의 목적은 이순신 장군과 남도의병의 정신을 기리는 것이었다. 역사 수업 시간에 알게 된 지식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의병들이 우리 국토를 지켜냈다는 사실과 이순신 장군의 전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호남의 의병분들이 어떻게 호남을 지켜냈는지와 이순신 장군과 수군들이 일어나 재건해 나갈 수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조선수군재건길’ 답사 프로그램은 나에게 임진왜란과 역사의 흐름을 깊게 이해하고, 새로운 관점과 생각을 가지게 해 줄 좋은 기회로 여겨졌고 담임선생님, 학교 친구들과 함께 답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조선수군재건길’은 조선이 칠천량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 임명되어 여러 수군과 함께 군량과 무기를 확보하며, 수군을 다시 일으켜 나간 길이다.
수군을 정비하고, 훈련하며 나아갔던 길로서 조선 수군의 사기를 다시 회복하게 해주었다. 진주에서부터 시작되어 구례를 거쳐 해남, 진도까지 이어진 길을 그대로 걷진 못했지만, 중요한 흔적을 밟아가며 답사가 이루어졌다.
구례에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구례에 있는 석주관성은 임진왜란 때 전라 방어사 곽영이 호남지역의 왜적을 막기 위해 진 위에 쌓은 성이다. 석주관성의 한쪽 자리에 정유재란 당시 석주관성을 지키다가 순절한 구례 출신 의사 일곱 분과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구례 현감을 모신 무덤인 ‘칠의사묘’도 있었다. 해설사 분의 설명 중 석주관성이 위치한 이곳의 지형이 높게 솟아있고,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통하는 중요한 곳이었기에, 이곳에 성을 쌓고 전투했다는 부분에서 임진왜란 당시 우리 의병들이 철저하게 계획하여 지켜내려 한 간절함과 의지가 와닿았다.
‘칠의사묘’에 들러 ‘석주관성’에서 끝까지 맞서서 호남과 우리나라를 지킨 일곱 의사분들(왕득인,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과 구례 현감 이원춘, 함께했던 여러 의병분들을 추모했다.
지금까지 호남의 의병으로 고경명, 김천일 의병장 같은 몇 분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석주관성 한 곳에도 오백 여명의 의병분들이 맞서 싸우다 순절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역사 속을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던 나의 태도를 반성했다. 칠의사 외에도 석주관성에서 맞서 싸우신 다른 의병분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기억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모든 분의 이름을 기억할 수 없지만, 그 한분 한분의 정신만은 간직해 가고 싶었다.
구례에서 들른 또 다른 곳은 구례 읍사무소였다. 구례 읍사무소 옆에는 이순신 장군이 들렀던 정자 ‘명합정’이 복원되어 자리하고 있었다. ‘명합정’은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기 이전 파직된 후, 백의종군 당시에 들러 도체찰사 이원익과 나라의 앞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곳이다. ‘명합정’의 바로 앞에는 이순신이 명합정을 들릴 당시에도 살아 있었던 오백 년 된 왕버들나무가 있었다. 오백 년 전의 이순신 장군이 바라보았던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니 오백 년이라는 시간이 가깝게 느껴졌다. 이순신 장군은 이 왕버들 나무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명합정에서 나라를 걱정하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그리며, 나라와 가족을 생각하신 이순신 장군의 뜻을 이어, 내가 우리나라와 주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구례에서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조선수군출정공원’이었다. ‘조선수군출정공원’은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수군재건 과정이 그림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자세한 설명글을 읽으며 조선수군재건과정을 이해하고 기억하게 됐다. 수군재건과정이 설명된 곳을 지나오면 조선수군재건에 힘을 보탠 공신 ‘손인필’의 비각이 있다. ‘손인필’은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물품을 조달하고 군사를 모집하는 데에 힘썼다고 한다.
손인필 비각을 보며 이순신 장군과 여러 장군 뒤에서 힘을 쓰고 최선을 다했을 수군과 의병들, 백성들의 숨겨진 노력을 생각해 보았다. 좋은 화포와 같은 무기, 이순신 장군과 같은 뛰어난 장군의 덕도 컸겠지만 뒤에서 열심히 싸웠을 수군들과 바닷길을 안내해줬을 지역 어부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전라도와 우리나라가 지켜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름 모르는 모든 이들의 노력에 감사해졌다.
‘조선수군재건길’을 따라 걷는 여정은 강진과 완도, 해남 등을 거쳐 진도에 다다랐다. 마지막 으로 진도에서는 울돌목에 들러 이순신 장군과 수군의 명량대첩에 대해 답사하고 명량대첩축제에 참여했다. 울돌목은 ‘물이 우는 관문 길목‘이라는 뜻을 가지며 조류가 매우 빠르게 흐른다. 썰물 때는 서해에서 남해 방향으로, 밀물 때는 남해에서 서해 방향으로 조류가 흐르는 특성이 있는데 이순신 장군은 이 점을 잘 알고 활용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 같다.
울돌목 스카이워크를 걷고 케이블카를 타며 울돌목의 매우 빠른 물살과 회오리물살을 관찰 할 수 있었다. 암초에 부딪혀 회오리 모양으로 물살이 빠르게 도는 것이 놀라웠고 이를 이용한 이순신 장군과 수군의 지혜에 감탄하게 되었다.
명량대첩축제에 참여하기도 했다. 명량대첩을 기념하는 부채를 만들고 명량대첩 박물관을 탐방했다. 사백 여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축제에 참여하고 박물관을 둘러보며 명량대첩과 조선수군의 재건을 기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명량대첩축제에 참여하여 명량대첩과 조선수군을 기억하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선수군재건길‘ 답사는 구례부터 시작해 진도 울돌목에서 마치게 되었다. 이번 답사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였다. 내가 가졌던 여러 생각 중 가장 오래 남았던 것은 역사와 상황을 보는 관점에 관한 것이었다. 답사 이전까지 임진왜란에서 뛰어난 화포 기술과 전술, 이순신 장군의 활약이 크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다. 조선수군재건길 답사를 통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름 모르는 많은 사람의 힘겨운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다.
답사를 마친 나에게 임진왜란에서 우리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다면, 많은 의병들과 군들, 함께 바라고 도왔던 백성들, 승병들 모두가 우리나라를 지키겠다는 한 가지 염원으로 함께 싸웠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조선수군재건길‘을 걸으며 호남과 우리나라의 소중함을 느끼고 임진왜란 당시 맞서 싸웠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했다. 왜의 침입에 맞서 싸웠던 남도의 의병들처럼 나도 우리나라와 지역, 주변인들을 생각하며 ’나라사랑‘을 작은 것부터 실천해 나가 보려 한다.
<저작권자 ⓒ 화순매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