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1층에 소담공방이 자리했다. 주인장은 박현옥 시인이다. 고향이 그리워 귀촌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6학년 교실이었던 곳에 둥지를 틀었다.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모르는 어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시를 쓴다.
5월도 하순으로 향하던 지난 20일, 토요일에 초대장을 보내왔다. 애기똥풀이 한창이어서 염색을 할 거라고.
꽃말이 좀 슬프다. ‘몰래 주는 사랑’, ‘엄마의 지극한 사랑’이다. 눈을 뜨지 못하는 새끼 까치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보는 어미까치의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눈을 뜨게 하려고 밤까지 낮 삼아 지극정성으로 애기똥풀을 물어와 그 즙을 발라 주었다. 새끼까치는 눈을 떴지만 어미 까치는 그만 기력이 쇠하여 죽고 말았단다.
한방에서는 백굴채라는 이름으로 약재로 이용하였다. 무좀, 습진 등의 피부병은 물론이고 항암효과까지 있다고 한다. 민간에서도 활용했다고 한다. 강하지는 않지만 독성이 있으니 함부로 많은 양을 먹는 것은 좋지 않다.
대개가 애기똥물의 노랗고 끈끈한 즙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묻는다고 큰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지만 손이나 옷에 이게 한 번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아서다. 이런 특성이 있어 천연염료로 사용된다. 우리 산하에 지천이니 은은한 노란색을 내는 데 이만한 재료도 없을 성싶다. 애기똥풀. “더이상 잡초로만 보지 마세요”
관사와 텃밭 주변 뒤뜰이 온통 노랗다. 해마다 잊지 않고 빼곡하게 피어난 애기똥풀 때문이다. 주인장이 애기똥풀을 뽑는다. 뿌리에서 잎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며, 뿌리 쪽으로 갈수록 색이 더 진하게 우러나온다며 실뿌리 하나까지 애기 다루듯 한다.
흙을 탈탈 털어 손수레에 담는다. 가마솥을 가득 채울 만큼 싣는다. 우물가로 간다. 김장철 배추처럼 씻고 헹군다. 가마솥에 꾹꾹 눌러 담는다. 물도 가득 채운다.
솥 안이 노랗게 짙어져 가는 동안, 하얀 쌀밥도 익어갔다. 부추를 다듬고, 상추를 씻고, 돼지고기를 볶았다. 오월의 눈부신 신록 아래 평상에 둘러앉아 먹는 점심은 별미였다. 상추쌈 입에 넣을 때, 장작은 부삭에 들어갔다.
두 시간여, 애기똥풀은 푹 익었고 물은 노랗다. 체에 걸러 노란물만 곱게 담았다. 60℃ 정도가 적당한 온도라고 한다. 염색할 천을 담갔다.
손가락을 넣어 보았다. 익는 줄 알았다. 뜨거운 물에서 조물조물하기 삼십여 분, 매염제(媒染劑)를 넣고 또 삼십여 분, 쉼 없이 조물조물했다.
각기 기능은 다르다. 명반은 원색을 유지하여 밝게 해주고, 동매염은 어둡게 하여 진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두 가지를 다 사용했다. 밝은 것은 머플러로, 진한 것은 그림 그릴 바탕으로 활용한다고 한다.
등에는 햇살이 내려앉고, 얼굴에는 김이 오른다. 주무르고 펼쳐보고 뜨거운 물도 계속 부어가면서 한 시간이 흐른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노란 물 위에 떨어져 천에 스민다.
찬물에 담가 빨고 또 빤다. 노란물이 맑은 물이 될 때까지.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니 겨울보다 낫다고 싱그럽게 웃는다.
돌아가는 길에 명주 머플러를 곱게 싸서 들려준다. 정성도 시간도 마음도 함께 담아서. 소담공방 주인장의 땀방울 송이송이 밴 미소가 차마 잊힐리야. 천연 염색 제품 비싸다고 투덜대는 일도 더는 없을 것이고.... . <저작권자 ⓒ 화순매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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