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너릿재 옛길입니다. 아픈 기억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릿재는 광주에서 화순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갯길입니다. 300년 가까이 된 오래된 길입니다. 고갯마루에 있는 유래비를 보면 원지실골, 원골이라 불렀습니다. 아마 원(院)과 주막이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이 1757년입니다. ‘판치(板峙)’였지요. 널빤지처럼 판판한 고갯마루라는 뜻이니, 우리말로 옮기면 곧 너릿재입니다.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편찬한 ‘여지도서’의 기록입니다.
1864년(고종 1년)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도 나옵니다. “판치는 (화순)북쪽 10리에 있으며 광주와 경계다”라고요.
이런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광주에서 순천이나 벌교, 보성 또는 장흥을 가려면 이 재를 넘어 화순을 거쳐야 했습니다. 깊고 험한 고개를 넘던 중 산적이나 도둑을 만나 죽음을 당하는 일이 많았답니다. 널[棺]에 실려 느릿느릿 내려온다 해서 너릿재라 불렀다는 설입니다.
역사의 고비마다 아픔이 켜켜이 후대에 이름에 어울리는 그럴싸한 해석이 덧붙여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동학농민운동과 한국전쟁과 광주민주화운동 등의 아픔이 서린 고개이니 수긍이 되기도 합니다.
1894년과 1895년 사이 겨울 수많은 동학농민군이 이곳에서 일본군에 처형당했다고 합니다. 1946년에는 광주에서 열리는 광복 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화순탄광 노동자와 주민이 완전 독립과 쌀 배급 증가를 요구하는 구호를 앞세우고 행진하다 미군정 경찰과 충돌하여 유혈사태가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경찰과 청년들이 희생되었습니다.
1971년 터널이 뚫리면서 옛길은 도로의 기능을 잃으면서 잊혀졌습니다. 새길이 뚫리면 옛길은 잊히기 마련입니다. 뚜렷했던 발자국은 희미해지고 그 길에 남겨진 무수한 사연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문경새재처럼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기도, 지리산 둘레길처럼 되살아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체 4km 정도로 걷기에 적당합니다. 쉬엄쉬엄 여유를 부려도 1시간 30분이면 너끈합니다. 자전거길로도 안성맞춤입니다.
5월, 그날의 비극이 서린 너릿재 옛길에 푸르름이 가득합니다. 비라도 내리면 초록 물이 뚝뚝 떨어질 듯합니다. 운동 삼아 산책 삼아 고갯마루에 도착하면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 전망대가 맞이합니다. 터널을 나와 화순으로 이어진 도로가 아스라이 내려다보이고 양편 산자락엔 싱그러움이 가득합니다.
화순 너릿재 옛길 초입 주차장 바로 위에는 소아르 갤러리가 있습니다. 아담한 정원이 예쁘고 카페를 겸하고 있어 너릿재 산책 후 쉬어가기 좋습니다.
최순희 전남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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