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귀봉 달빛 아래

박현옥 시인의 마음자락 | 기사입력 2023/04/21 [08:01]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여귀봉 달빛 아래

박현옥 시인의 마음자락 | 입력 : 2023/04/21 [08:01]

  © 화순매일신문


산허리 잡고 일어선

달빛 뒤로 한 체 추억 점을 이어가며

붉은 복사꽃 꽃잎이 쓰러지듯 흩날린다

 

호랑이가 어흥하며 서성이던 산등성이로

담 키운답시고 소주병 품에 안고 용감히 나섰던

동네 오빠 깡이 숨어 있는 골

 

으시시 돌아선 동굴 소풍 길에

고무신 싣고 산에 갔다가 고생만 하고 왔노라 던

산골 소녀 뒷담 가 달무리로 모여든다

 

텃마루에 걸터앉아 토방 흙 툭툭 밀어내며

꿈을 심었던 여귀봉 골 따라

푸른 치맛자락 펄럭이며 사월의 꿈들이 술렁인다

 

차갑게

뜨겁게

복사꽃이 지던 날

여귀봉 거울바위에 비칠

나의 복사꽃은

수줍게 물들이며 붉은 입술로 피어난다.

 

탐미

 

동면 복림마을엔 달빛으로 물든 작은 꿈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개울에서 첨벙거리며 놀던 아이에서, 흰머리 소녀가 되어 바라보는 달빛도 여전히 따뜻하다. 마을에서 동쪽으로 여귀봉이 있는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성한 곳이라 할까. 무서운 전설이 있었고, 용감한 오빠들의 활약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고요가 흐르는 시간에 내게 다가온 여귀봉의 달빛은 그저 편안함이다. 눈으로 끌어다 가슴에 묻히고 싶은 포근함이다.

 

설렘으로 톡! ! 건드린 사월의 바람이 달빛 아래 잠이 들고, 작은골 따라 복사꽃 연정이 시나브로 흐른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이동
메인사진
포토뉴스
지리산국립공원 반야봉 상고대 ‘활짝’
이전
1/36
다음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
사설칼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