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물가에서 산을 바라보네

화순군 3대 명승 임대정 원림에 대한 ‘단상’

김재근 객원기자의 맛담멋담 | 기사입력 2023/04/11 [08:01]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새벽 물가에서 산을 바라보네

화순군 3대 명승 임대정 원림에 대한 ‘단상’

김재근 객원기자의 맛담멋담 | 입력 : 2023/04/11 [08:01]

  © 화순매일신문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 단비가 꽃비 되어 내렸다. 이웃집 마당 같은 임대정 원림을 찾았다. 원림은 집터에 딸린 숲을 말한다. 임대정(臨對亭) 원림(園林)은 임대정이라는 정자와 주변에 조성된 정원이다.

 

화순군 사평면 상사마을 큰길 옆 야트막한 언덕에 있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구성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활용한 우리나라 전통 정원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2410일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전국에 134곳의 국가 지정 명승(名勝)이 있다. 화순군은 세 곳이다. 임대정 원림(89), 화순적벽(112),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114)이다.

 

임대정의 시초는 1500년대 말에 고반(考縏) 남언기(南彦紀)가 조영한 고반원(考縏園)이다. 1568(선조 1) 생원시에 합격했지만 관직 생활은 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초려(草廬)를 짓고 자연과 벗하며 살았다. 수륜대(垂綸臺)라 이름 짓고 대 아래 못에 낚싯대를 드리우며 즐겼다.

 

병조참판과 사헌부 집의를 역임한 사애(沙厓) 민주현(閔胄顯:1808~1882)1862(철종 13) 귀향하여 고반원의 옛터를 손에 넣은 후 정자를 세우고 임대정이라 하였다. 봉정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사평천과 합쳐지는 곳에 정자가 위치하였다 하여 물가에서 여산을 대한다(落朝臨水對廬山)’는 중국 송나라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시구에서 이름을 따왔다.

 

본래 한 칸의 초정(草亭)이었으나 시간이 지나 허물어졌고, 손자 민대호(18601932) 등이 1922년 정자를 중수하면서 2칸을 더 짓고 기와를 올려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시를 읊었고, 충효 예절을 가르치는 서당으로도 활용되었다.

 

임대정은 화려함은 커녕 권위도 없다. 소박하고 아기자기하다. 바람에 비에 날리는 꽃잎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주변 정비공사 중이어서 그랬을까, 명승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초라했다. 원림은 하원과 상원으로 나뉘는데 못이 위에 하나 아래에 둘이 있다.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흥취가 제법 크다. 그리 높지 않지만 위치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달라, 아래에서 위를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재미가 제법이다.

 

상원에는 넓지 않은 평탄한 마당에 정자가 있고 아주 작은 사방형의 못이 있다. 사애선생장구지소(沙厓先生杖屨之所)라는 글이 새겨진 자연석도 있다. 원림을 경영한 사애가 즐겨 머물러 발자취를 남긴 곳이라는 뜻이다. 정자 앞으로 사평천이 흐르고 너른 뜰이 멀리까지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둘레에는 대나무 숲이 있어 청량감을 더한다.

 

못은 피향지(披香池)라고 한다. 가운데 둥글게 섬을 만들어 대나무를 심었다. 돌을 세워 세심(洗心)이라고 썼다. 못 밖에는 걸터앉는다는 뜻인 기임석(跂臨石)이라 새긴 돌을 두었다.

 

아래 못 두 곳 모두 섬을 만들어 배롱나무를 심었다. 봄 매화나 벚꽃도 일품이지만 한여름 풍경은 찬란하다. 넓은 곳에는 홍련을 좁은 곳에는 백련을 가꾸었는데, 배롱나무 붉은 꽃 아래서 어우러질 때 이 작은 원림의 아름다움을 어디에 비할까, 가히 천하제일을 다툴만하다.

 

큰길에서 정자로 오르려면 못 가운데를 지나야 한다. 홍련지와 백련지 사이에 있는 둑 위로 난 길과 이어진 투박한 돌계단이 나온다. 높지 않은 언덕을 해찰하며 걸어 오르면 사각형 못인 피향지가 맞이한다. 몇 걸음 안 되는 길이지만 짧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여운이 깊고 오래간다.

 

주인은 기임석에 앉았을 것이다. 피향지에서 마음을 씻고 나면, 물은 홈통을 따라 아래에 있는 못으로 떨어진다. 그 물은 홍련과 백련 그리고 배롱나무 붉은 꽃을 피운다. 마음을 씻은 물이 꽃을 피워 마음을 아름답게 만든다. 이것이 사애가 꿈꾸는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 화순매일신문


화순이 가진 명승 세 곳 중 적벽과 규봉은 화순 8경 중 1경과 6경에 선정되었다. 임대정은 들지 못했다.

 

화순군은 관광인구 500만 명 유치를 위해 총력전이다. 첫 번째 일성이 고인돌 공원 축제다. 이를 알리는 펼침막이 가는 곳마다 빼곡하다. 내건 자의 이름이 더 커 보이고, 연예인 공연을 알리는 것인지 축제를 알리는 홍보인지 헷갈리기까지 하다.

 

광주광역시 인구가 약 140만 명이다. 모든 시민이 서너 번 다녀가야 500만 명이 된다. 바다는 처마의 낙숫물조차도 버리지 않는다. 시냇물과 강물도 가리지 않는다. 다 담아내니 바다가 된다. 관광도 마찬가지다. 자원 하나라도 허투루 버릴 수가 없다. 하물며 국가지정 명승이다.

 

화순 적벽 버스투어를 다녀왔다. 현장 탑승과 예약제를 다 이용했다. 출발지와 요금만 달랐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약제 적벽버스투어는 들어갈 때는 이용대체육관에서 출발하여 큰재를 넘어 이서면을 통과하고, 돌아올 때는 묘치고개를 넘어 동면 복암리 광업소 앞을 지난다. 이곳에서 임대정까지는 10분 이내의 거리다. 포함시키면 어떨까 싶다.

 

가까운 담양군 가사문학면 소쇄원과 쌍벽을 이루는 임대정이다. 건립 시기도 비슷하고 같은 명승이다. 소쇄원은 계곡에 자리 잡았고 임대정은 평야에 위치한다. 매력이 다르다.

 

소쇄원이 꽃 심어 유명해졌던가. 500년 자원과 한철 꽃이 같을 수는 없다. 문화에도 품격이 있다. 꽃 보다는 안목(眼目)을 키울 때다.

 

* ‘맛담멋담은 오늘을 살피어 내일을 다듬는, 화순(和順)의 산물(産物) 인물(人物) 문화(文化) 음식(飮食) 이야기[]. 네이버 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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