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치료 없는 정신질환이 문제다

화순매일신문 | 기사입력 2019/05/30 [07:30]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적절한 치료 없는 정신질환이 문제다

화순매일신문 | 입력 : 2019/05/30 [07:30]

 

▲     © 화순매일신문


최근 진주 방화 살인사건이 발생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 사건과 관련하여 범인의 정신과적 병력이 보도되면서 나도 비슷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와 같은 정신질환자에 의해 발생하는 범죄의 위험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많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신질환자의 범행을 보면 범행상대에 대한 현실적 이해관계보다는 자신의 망상에서 비롯된 비현실적인 이해관계 대상에 대한 범죄가 많습니다. 이를 세간에서는 묻지마 범죄다’ ‘여성혐오범죄다’ ‘사이코패스다며 정신질환이라는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환자가 아닌 정상인의 범죄심리를 대입해서 분석하려고 합니다.

 

급성기 정신증 환자는 사고장애(망상), 환각, 비논리적인 사고와 혼란스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 말 임세원 교수를 살해하였던 범인은 머리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는 망상을 가지고 있던 정신질환자로 본인 머리에 폭탄을 설치했다며 타인을 공격하거나 스스로 머릿속 폭탄을 꺼내려고 자해하는 등 스스로의 증상을 병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망상장애환자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비슷한 예로,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은누군가 나를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들이 담배꽁초를 일부러 나에게 던진다는 망상과 환각을 보이며 불특정 여성에게 범행을 저지른 정신질환자였습니다. 이렇듯 조현병은 급성악화기에 환청, 망상에 압도된 환자가 불안과 초조, 충동조절의 어려움 등의 증상이 심해져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게끔 만들기도 합니다. 이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된 환자는 심리적으로 불안해져 음주나 약물에 의존하게 되고 이로 인해 공격성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적절한 치료를 통해 조절될 수 있으며 꾸준한 유지치료로 상당 부분 예방이 가능합니다. 치료에 순응적인 조현병 환자의 대부분은 오히려 사회성이 부족하고 어리 숙한, 다소 순종적인 성향으로 공격성을 관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때문에 범행이 어떤 동기로 일어났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환자가 어떤 망상이나 환각을 가지고 현실 판단 능력을 상실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일 뿐, 정신질환자의 범죄를 예방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보다는 환자를 치료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에 어디가 문제가 있고 이를 어떻게 보완해야하는 지를 고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최근 우리 정신의료정책은 환자의 인권을 강조하면서 환자 본인의 동의 없는 보호입원(일명, 강제입원)을 매우 어렵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로 인해 자신의 증상을 병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아직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갈 준비가 안됐는데도 적절한 치료 없이 사회로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자가 입원하지 않고도 적절히 치료받고 관리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아직은 미비한 수준입니다. 일례를 들자면,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자는 보호의무자라는 이유로 환자의 부모님들이 평생 책임져 왔습니다. 환자를 정신병원에 가두는 것도 부모의 책임이고 병원비를 지불하는 것도 이들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환자는 병에 대한 인식이 없으므로 자신을 강제로 병원에 가둔 가족에게 적대감을 가지기 쉽고, 자신이 가진 망상에 사로잡혀 실제로 부모를 공격하고 심지어 살해하기까지 합니다. 30년 전 아버지에 대한 피해망상으로 아버지를 칼로 찌르려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조현병 진단을 받고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피해망상을 비롯한 정신병적 증상은 호전되었고 어수룩하지만 공격적이지 않은 만성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아직도 아버지는 이 아들과 함께 잠을 자거나 아들을 퇴원 시킬 자신은 없다고 합니다. 아들이 두렵고 병이 다 나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병원비를 부담하고 최소한의 뒷바라지를 하며 책임을 다하겠지만, 자신이 죽고 나면 그 환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도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아버지는 어느새 80세를 훌쩍 넘으셨습니다. 이 환자의 치료와 관리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요? 아버지일까요 아들 본인일까요?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와 관리의 책임은 환자 본인도 그 가족도 아닌 국가가 마땅히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끼칠 위험성이 있는 환자라면, 이들을 보호하고 치료할 책임을 가족이나 의료인에게만 떠넘길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합니다. 필요한 경우, 사법부가 법으로 강제하는 치료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하고 입원 필요성을 법률로 판단하는 사법입원제도를 운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현행 법률에서는 보호의무자가 정신질환자를 책임질 의무를 모두 떠안고 있어 강제 입원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 치료비용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모두 보호의무자(주로 직계가족)가 감당해야합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함 일상, 진주 방화살인사건의 피해자는 한밤중에 자다 말고 불났다는 소리에 뛰쳐나가 영문도 모르게 칼에 찔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병에 대한 인식없이 피해망상에 빠져 공격성이 반복되었던 조현병 환자가 벌인 이 일에 대해 과연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정신건강을 담당하는 전문가의 한사람으로서 돌아가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참담한 심정으로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보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성록/화순군 치매안심센터 협력의

 

<약력>

-보은병원 대표원장

-한국정신신체의학회 임상뇌파인증의

-곡성군장기요양등급 판정위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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