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老부부의 고락(苦樂)

화순매일신문 | 기사입력 2019/05/23 [07:01]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어느 老부부의 고락(苦樂)

화순매일신문 | 입력 : 2019/05/23 [07:01]

 

▲ 김한석 보은병원 진료원장.     © 화순매일신문


노부부가 진료실로 들어섰다
. 언뜻 보기에도 할아버지의 구부정한 허리와 얼굴에 그어진 깊은 주름 고름에 세월의 고단함이 잔뜩 배어 있어보였다.

 

할머니 역시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한쪽 눈꺼풀이 감기어지지 않은 상태로 한쪽 눈만 깜박거리고 있었고 불편한 다리로 휘청거리며 걷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80세가 가까워지면서 성 기능에 현저한 장애를 겪으셨다. 그러면서부터 할머니가 다른 사람들과 바람을 피우고 다닌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할머니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간혹은 그게 폭력이 되기도 하고 간혹은 잔소리가 되기도 하고 하루 종일 할머니를 뒤 쫒아 다니며 감시를 하거나 귀찮게 하시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됐다. 밤에도 혹시 자신이 잠에 든 이후에 할머니가 혼자서 밖을 나가 버릴 까봐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정신과적 상담이 시작된 이후 할아버지는 망상장애(의처망상)와 치매의 진단으로 약물치료를 시작하셨다. 약물치료가 시작되면서부터 밤에 조금 더 잠을 잘 이루시게 된 것과 망상에 대한 집착은 조금 누그러졌지만 약물치료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 노인의 늙어가는 몸뚱이에 한 자루 더 큰 짐을 얹어놓고 있었다.

 

소변을 보기가 좀 더 힘이 들어졌고 간혹 안절부절 못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거나 손발이 떨리고 행동이 굼떠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다시 병원을 찾은 노부부의 표정에서 정신과 의사로서 그들에게 큰 도움을 드리고 있지는 못하고 있음을 진료실을 들어서는 그들의 표정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좀 더 차분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힘들어 보이고 더욱 지쳐 보였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지켜보면서 한없이 안쓰러워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80이 넘은 나이에 뇌졸중의 후유증을 앓고 있으면서 보행조차 힘에 겨운 자신의 아내가 할아버지에게는 여느 아름다운 여성보다도 소중하고 빼앗길수 없는 소중한 사람일 것이다.

 

자신의 성적 기능의 문제가 생기면서부터 혹시나 아내가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도 아끼지도 않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갑자기 엄습하면서 아내가 자신을 절대로 떠나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아마도 의처망상을 만들어 내고 그러한 망상을 이유로 절대로 아내가 자신을 떠날 수 없게 따라다니고 감시하고 귀찮게 하고 계신 것이다.

 

그렇게 힘들고 괴로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할머니의 차분함과 할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위로는 젊은이들이 주고받는 격한 사랑의 감정은 아닐지 언정 평생 자신을 배려해주며, 고락을 함께 해온 그의 삶에 대한 인정과 배려의 마음으로 느껴졌다.

 

자신 또한 여러 가지로 몸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는 할아버지가 소변 때문에 힘들어 하신다거나, 불안해 하신다거나, 손이 떨린다거나... 구구절절 할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좀 더 나아 질 수 있도록 잘 배려 부탁드린다는 부탁까지 잊지 않으시며 구부정한 허리를 일으켜 할아버지를 부축해 나가시는 할머니의 절뚝거리는 발을 보며 한 평생 부부의 인연이 저런 것 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 깊은 곳의 숙연한 저림을 불러일으킨다.

 

김한석 보은병원 진료원장.

 

<약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보건복지부지정 알코올치료 전문병원 광주다사랑병원 진료원장

-나주면허시험장 정신과 판정위원

-한국정신신체의학회 노파인정의

-화순교육청 Wee센터 자문위원

-한국중독관리센터 협회 이사

-광주 광산구 중독관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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