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똥풀, 더 이상 잡초로 보지 마세요

화순 소담공방 천연염색 체험기

김재근 객원기자의 맛담멋담 | 기사입력 2023/05/25 [08:01]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애기똥풀, 더 이상 잡초로 보지 마세요

화순 소담공방 천연염색 체험기

김재근 객원기자의 맛담멋담 | 입력 : 2023/05/25 [08:01]

  © 화순매일신문


화순군 동면 복암리
, 석탄시대에는 꽤 번성했던 마을이다. 화순광업소가 쇠퇴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떠났다. 아이들로 소란스러웠던 경복초등학교도 점점 조용해지더니 폐교되었다. 그후 경복미술관이 들어섰다.

 

미술관 1층에 소담공방이 자리했다. 주인장은 박현옥 시인이다. 고향이 그리워 귀촌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6학년 교실이었던 곳에 둥지를 틀었다.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모르는 어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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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 둘레에 화단에 뒤뜰에는 푸성귀를 심고, 꽃을 가꾸고, 약초도 재배한다. 이것들로 새하얀 무명천에 명주천에 수수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물을 들인다. 봄에는 애기똥풀로, 가을에는 메리골드로, 겨울에는 감물로 한다. 여름에는 색이 곱게 나오지 않아 쉰다. 색을 들인 천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재봉틀 돌려 옷도 만든다.

 

5월도 하순으로 향하던 지난 20, 토요일에 초대장을 보내왔다. 애기똥풀이 한창이어서 염색을 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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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를 자르면 노랗고 끈끈한 즙이 나오는데 아기 똥 같다고 하여 애기똥풀이라 부른다. 5월에서 8월 사이 길가에, 산기슭에, 들판에 앙증맞게 노오란 꽃을 피운다. 양귀비과의 두해살이풀이다. 지역에 따라 젖풀, 씨아똥, 까치다리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중국, 몽골, 시베리아 등이 자생지라 한다.

 

꽃말이 좀 슬프다. ‘몰래 주는 사랑’, ‘엄마의 지극한 사랑이다. 눈을 뜨지 못하는 새끼 까치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보는 어미까치의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눈을 뜨게 하려고 밤까지 낮 삼아 지극정성으로 애기똥풀을 물어와 그 즙을 발라 주었다. 새끼까치는 눈을 떴지만 어미 까치는 그만 기력이 쇠하여 죽고 말았단다.

 

한방에서는 백굴채라는 이름으로 약재로 이용하였다. 무좀, 습진 등의 피부병은 물론이고 항암효과까지 있다고 한다. 민간에서도 활용했다고 한다. 강하지는 않지만 독성이 있으니 함부로 많은 양을 먹는 것은 좋지 않다.

 

대개가 애기똥물의 노랗고 끈끈한 즙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묻는다고 큰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지만 손이나 옷에 이게 한 번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아서다. 이런 특성이 있어 천연염료로 사용된다. 우리 산하에 지천이니 은은한 노란색을 내는 데 이만한 재료도 없을 성싶다.

애기똥풀. “더이상 잡초로만 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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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공방이 자리한 폐교는 야트막한 산을 등지고 있다.

 

관사와 텃밭 주변 뒤뜰이 온통 노랗다. 해마다 잊지 않고 빼곡하게 피어난 애기똥풀 때문이다. 주인장이 애기똥풀을 뽑는다. 뿌리에서 잎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며, 뿌리 쪽으로 갈수록 색이 더 진하게 우러나온다며 실뿌리 하나까지 애기 다루듯 한다.

 

흙을 탈탈 털어 손수레에 담는다. 가마솥을 가득 채울 만큼 싣는다. 우물가로 간다. 김장철 배추처럼 씻고 헹군다. 가마솥에 꾹꾹 눌러 담는다. 물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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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면 노란 물이 우러난다고 한다. 부삭에 장작을 쌓고 불을 붙였다. 타오른 불길이 여름 낮까지 활활 태운다. 한약처럼 달이고 달인다. 햇살은 따가웠고 장작불은 뜨거웠다.

 

솥 안이 노랗게 짙어져 가는 동안, 하얀 쌀밥도 익어갔다. 부추를 다듬고, 상추를 씻고, 돼지고기를 볶았다. 오월의 눈부신 신록 아래 평상에 둘러앉아 먹는 점심은 별미였다. 상추쌈 입에 넣을 때, 장작은 부삭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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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할 천도 삶아서 빨았다. 풀물을 빼고, 혹시 있을지 모를 이물질도 씻어내고,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란다.

 

 

두 시간여, 애기똥풀은 푹 익었고 물은 노랗다. 체에 걸러 노란물만 곱게 담았다. 60정도가 적당한 온도라고 한다. 염색할 천을 담갔다.

 

손가락을 넣어 보았다. 익는 줄 알았다. 뜨거운 물에서 조물조물하기 삼십여 분, 매염제(媒染劑)를 넣고 또 삼십여 분, 쉼 없이 조물조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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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염제는 섬유에 색소가 직접 물들지 못하는 물감을 고착시키는 물질이다. 천연염색에서는 명반과 동매염과 철매염을 쓴다. 소담공방 주인장은 명반과 동매염만 쓴다고 했다. 철매염이 빠르고 강한 효과가 있지만 피부에는 좋지 않아서라고 했다.

 

각기 기능은 다르다. 명반은 원색을 유지하여 밝게 해주고, 동매염은 어둡게 하여 진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두 가지를 다 사용했다. 밝은 것은 머플러로, 진한 것은 그림 그릴 바탕으로 활용한다고 한다.

 

등에는 햇살이 내려앉고, 얼굴에는 김이 오른다. 주무르고 펼쳐보고 뜨거운 물도 계속 부어가면서 한 시간이 흐른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노란 물 위에 떨어져 천에 스민다.

 

찬물에 담가 빨고 또 빤다. 노란물이 맑은 물이 될 때까지.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니 겨울보다 낫다고 싱그럽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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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말려야 색이 곱게 든다고 한다. 어찌 알았는지 구름이 몰려든다. 바람도 살랑거리며 찾아온다. 빨래줄에 매달려 흔들리는 노란 바람에 비로소 이마의 땀이 식는다. 말라가는 천을 보며 말 없는 대화가 오갔다. 아침 아홉 시에 시작한 일이 오후 세 시가 넘어 끝났다.

 

돌아가는 길에 명주 머플러를 곱게 싸서 들려준다. 정성도 시간도 마음도 함께 담아서. 소담공방 주인장의 땀방울 송이송이 밴 미소가 차마 잊힐리야. 천연 염색 제품 비싸다고 투덜대는 일도 더는 없을 것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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