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로운 낭만에 대하여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부티'나게 즐기기

김재근 객원기자의 맛담멋담 | 기사입력 2023/05/22 [07:01]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호사로운 낭만에 대하여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부티'나게 즐기기

김재근 객원기자의 맛담멋담 | 입력 : 2023/05/22 [07:01]

  © 화순매일신문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여행만 연구하는 선배에게 들었다
. 두 가지만 명심하면 누구나 멋진 여행을 즐길 수 있다고.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기억의 절반은 먹는 것이다.”

호사(豪奢)로워야 추억이 오래간다.”

 

가르침을 품에 안고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을 찾았다. 조금은 여유롭다는 평일을 택했고, 인터파크에 들러 탑승권도 준비했다. 하루 세 차례 있다는 문화해설사 설명도 듣지 않기로 했다.

 

번잡함을 피해 주 행사장 반대편인 서문으로 들어섰다. 습지를 빙 둘러 연결된 길을 따라 늘어선 수양버들이 싱그럽다. 오월의 신록을 쓰다듬기도 이마에 부딪치기도 하며 걷다 보니 꿈의 다리.

 

다리를 건너니 메타세콰이아 길이 꿈길처럼 이어진다. 가로수 그늘 아래 벤치엔 가족들, 연인, 친구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여유롭다.

 

호수정원 나루터에서 정원드림호에 올랐다.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소음도 진동도 없다. 오월의 햇살이 뱃머리에 자리 잡았고, 바람은 부드럽게 볼을 어루만지고 지난다. 호수 중앙 동산을 돌아 다리 밑을 통과해 프랑스 정원 앞을 지나 좁은 물길로 들어선다. 동굴이 맞이한다. 주렁주렁 매달린 불빛이 몽환적이다. 어둠이 짙으면 환상적인 유혹을 느낄 수 있다고 선장이 말한다. 괜히 들었다. 이런 이야기는 안 듣는 게 더 이로운데, 듣고 안 올 수는 없는데.

 

동굴을 나오니 순천의 젖줄 동천이다. 물길을 거슬러 꿈의 다리, 출렁다리, 물 위의 정원이 차례로 지나간다. 소풍 나온 것인지 유치원 아이들이 강변 둑을 줄지어 걸으면 손을 흔든다. 마주 흔들어 준다. 마음까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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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분이 한 호흡인 듯 흘렀다. 재미도 배고픔은 이길 수 없나 보다. ‘가든밥상이 넘어지면 배꼽 닿을 거리에 보인다. 규모도 깔끔함도 놀랍지만 가격이 더 마음에 든다. 팔천 원 메뉴가 제법 보인다. 힘들다고 해도 인정은 아직 살아 있나 보다. 꼬막이 산지인 벌교가 옆 동네다. 꼬막 비빔밥을 골랐다. 요즘 만 원으로는 비빔밥도 못 먹는다는 말은 맞나 보다. 일만 이천 원이다.

 

누가 이 생각을 했을까. 식당 앞에 관람차 승차장을 둘 생각을. 밥을 먹으면 게을러지기 마련이다. 쉼 대신 관람차를 탔다. 사천 원으로 게으름을 감춘 셈이다. 이게 제법 타는 재미가 있다. 넓긴 넓다. 꽃구경에 풍경 감상에 또 삼십 분이 훌쩍 지난다.

 

말 타면 마부도 부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갈대밭 가는 스카이 큐브를 바로 타기로 했다. 메타세쿼이아 거리를 지나고 언덕을 넘었다. 길가에 주막 같은 찻집이 제법 멋지다. 지나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듯한 그런 분위기다. 이럴 땐 커피 한 잔 먹어 주는 것이 예의다. 얼음 동동 띄운 아메리카노에 달달한 떡을 곁들였다. 분위기 탓인지 재료 탓인지, 맛이 일품이다. 갈대밭은 이미 기억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창밖으로 사람이 흐르고 관람차가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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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오를 시간이다. 다시 꿈의 다리를 건넜다. 서쪽 지역에 자리한 정원역에 도착했다. 스카이 큐브를 탔다. 순천만역까지 십여 분 남짓 왕복 팔천 원이란다. 씽씽 달린다. 몸도 마음도 상큼하다. 이대로 영원히 달렸으면. 엄마 찾아 우주로 떠나는 철이를 태운 은하철도 999를 찾아서.

 

순천만역에서 갈대열차로 갈아탔다. 이건 공짜란다. 갈대숲 들어가는 다리 위에 서니 바닷바람이 제법 드세다. 갈대밭을 가로지르는 데크 위를 걸었다. 갈대가 아직은 푸릇한 청춘이다. 햇살에 익고 바람에 씻기고 세상 순해지는 가을에 만나자 기약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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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이 환한 카페에 들렀다. 팥빙수 한 그릇 두고 창가에 앉았다. 창밖 풍광이 한 폭 수채화다. 비라도 내리면 아주 잘 어울리겠다. 한입 두입 팔천 원이 사라져 갈 즈음 갈대열차가 도착했다.

 

스카이 큐브 타기 전 김승옥 문학관에 들렀다. 장독대 옆 돌담에 장미가 붉은 입술처럼 화사하다. 서가에서 무진기행을 펼쳤다. 젊은 시절 몽환적인 이 소설에 꽤 가슴앓이 했었지. 안개라는 제목으로 영화도 만들어졌고, 신성일과 윤정희가 주연이었던가.

 

씽씽 달려 다시 정원역이다. 아침부터 고생한 발에 위로를 주려고, 커피 마시며 찜해 두었던 곳을 찾았다. 한방체험센터 족욕장을. 안내하는 처자의 설명이 야무지다. 하마터면 만병통치약으로 착각할 뻔했다.

 

시원한 매실차 대신 뜨끈한 쌍화차를 선택하고 작약꽃 향기 어지러운 쪽마루에 앉아 이십 분 담갔다. 칠천 원에 몸도 마음도 가뿐하다. 기분 탓인가. 이 느낌에 더 놀고 싶은데, 가야 할 시간이란다. 노는데 열중하느라 사진 찍는 걸 게을리했다. 부리나케 찍고 또 찍었다.

 

하나둘 떠난 빈자리를 어둠이 채운다. 녹차 아이스크림도 먹지 못했는데... .

 

호사로운 낭만을 위하여, 아낌없이 베풀었다. 대충 정확하게 입장료 포함하여 팔만 원 정도. 가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니 비싸다 싸다 평가는 하지 않기로 했다. 틈틈이 이건 많이 했다. 색다른 즐거움이 기다리니 한번 다녀가라는 초대 전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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