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평안하고 ‘풍년가’ 울리게 하소서”

하룻밤 ‘세 번’, 이서면 야사마을 정월 보름 당산제

화순매일신문 | 기사입력 2023/02/06 [07:01]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그저 평안하고 ‘풍년가’ 울리게 하소서”

하룻밤 ‘세 번’, 이서면 야사마을 정월 보름 당산제

화순매일신문 | 입력 : 2023/02/0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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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화순을 이야기하는 수다줌마입니다.

 

어릴 적, 정월 대보름은 흥겨웠습니다. 열 나흗날 밤은 절정이었습니다. 당산제 때문입니다. 낮부터 메구를 치느라 꽹과리·징소리 요란했습니다. 지신밟기입니다. 보름 다음날까지 액을 쫓고 복이 깃들기를 빌었습니다. 사흘 동안 온 동네가 들썩였습니다. 축제였습니다.

 

철이 들어갈 무렵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마을 운동이 앞장서서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어 갔습니다. 길이 넓어졌고 흙담과 볏짚 지붕이 사라졌습니다. 시멘트와 슬레이트 양옥집이 나타났습니다. 오래된 것은 뭐든 버려야 할 것으로 여겨지던 때였습니다.

 

장구를 배워야 할 오빠는 도시로 갔습니다. 꽹과리 치던 상쇠가 멋져 사흘 내내 따라다녔던 나도 고향을 떠났습니다. 어른들은 많이 늙었습니다. 지신밟기도 당산제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젠 책에서나 텔레비전에서 구경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옛것이 그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800년 전통을 이어 온 이서면 야사리 당산제를 주관하셨던 야은 정기호 님이 떠올랐습니다. 문화해설사를 하며 인연을 맺었던 분입니다. 동복 향교에서 전교(典校)로 활동하십니다.

 

놀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규모가 예전과 같지는 않지만, 구경도 하고 복도 받으라며. 작년까지 주관했지만 이젠 연로하여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하시면서도 적극 권하십니다. 그것만으로도 명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당산제 참관을 허락해 주시고 자상하게 안내해 주신 개발위원장 이순준, 이장 하형수, 주민 조유성과 동네어르신들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부터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합니다. 6·25 전쟁 때 마을이 불타면서 자료를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800년 정도 될 것이라고 추정만 할 뿐입니다.

 

시대에 따르고 환경에 맞추어 간소화되었습니다. 제를 지내기 전 알림장이었던 메구놀이는 사람이 없어 할 수 없습니다. 자정을 넘어 시작하여 새벽녘에 끝마쳤지만, 앞당겨 자정 이전에 끝납니다. 명맥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만 해도 감사할 일입니다.

 

준비부터 진행까지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합니다. 비용도 마을 공동 제답(祭畓) 수입에서 충당하거나 집집마다 추렴합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 제를 진행하는 사람도 마을총회에서 뽑습니다. 뽑힌 사람은 정월 초하루부터 항상 목욕재계하고 궂은 곳은 가지 않습니다. 밖의 출입을 삼가며 몸과 정신을 맑게 유지합니다. 제를 지내기 3일 전, 당산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한 뒤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놓습니다.

 

독특하게 진행됩니다. 하룻밤 세 번입니다. 세 군데 상을 차리고 복도 세 번을 받습니다. 그 복이 있어 지금도 이어지나 봅니다. 절차는 제사와 비슷합니다. 다른 점은 제관이 아니라도 원하는 사람은 술을 올리고 절을 할 수 있습니다. 여자는 음복 전에 참여하여 소원을 올리고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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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투명한 하늘에 보름달은 휘영청하고, 마을은 적막합니다. 간간히 개 짖는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마을회관에서 준비한 음식을 리어카에 싣습니다. 제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제물과 함께 움직입니다. 메구소리 흥겨운 알림장도 참관하는 사람도 없어 도리어 엄숙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금사정터에서 시작합니다. 금사(錦沙) 하윤구(河潤九, 1570~1646)가 세운 정자가 있었던 장소라고 합니다. 느티나무가 당산 할아버지입니다. 원래 있던 늙은 나무가 죽자 새로 심어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이사신위(里社神位)’라는 목신위패를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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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폐교된 운동장 한가운데에 있는 쌍 느티나무입니다. ‘학교 당산이라고도 부릅니다. 400살 정도 되는 보호수입니다. ‘당산신위(堂山神位)’라고 쓰인 목신위패를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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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은 세 번째입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라가 위태로우면 울음소리를 낸다는 그 유명한 야사리 은행나무입니다. 당산에는 별신지위(別神之位)’라고 쓴 목신위패를 붙입니다. ‘할머니 당산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마도 은행이 주렁주렁 열리는 그 생산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날 차렸던 음식으로 잔치를 벌입니다. 중심은 시루에 찐, 붉은 팥이 섞인 맵떡입니다. ‘약떡이라 부릅니다. 당산제를 모시고 난 후에 꼭 먹어야 할 가장 의미 있는 음식입니다. 복이 여기 가득 들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지신밟기의 떠들썩한 축제는 멈췄습니다. 풍흉을 점치는 줄다리기도 그 줄로 당산나무를 감는 당산 옷입히기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을회관에 모여 약떡을 먹으며 복을 주고 받는 풍경은 여전합니다. 대를 이어 끊이지 않고 이어졌으면 합니다.

 

화순을 이야기하는 수다줌마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최순희 전남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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